2015년 2월 19일 목요일

서울방송 드라마 '기분좋은 날'을 보고

파킨슨병 환자와 가족의 시각에서 SBS <기분 좋은 날>은 어떻게 보였을까? 8년차 파킨슨병 환자인 진과 작년에 파킨슨병 판정을 받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구름이 나눈 진솔한 대화를 녹취했습니다. <편집자 주>

진; 오늘 저희는 기분 좋은 날에 대해서 ‘좋은 드라마 상’을 주자는 취지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. 저는 이 드라마가 파킨슨병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. 그런 의미에서 어떤 형태로든 상을 주고 싶었어요. 흔히 상은 연말에 주는데, 작년 연말에는 경황이 없어서 시기를 놓쳤고요. 늦었지만 이대로 이 드라마를 보낼 수는 없지 않나 싶은 생각에 좀 힘들게 추진을 하게 되었습니다.
드라마를 어떻게 보셨나요? 저는 이번에 우리 환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증상을 따로 묶어서 영상 편집을 해봤는데요. 그 과정에서 보니 작가께서 파킨슨병과 가족들의 애환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조사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.

구름; 이 드라마는 마치 우리 집 이야기 같았어요. 우리 집도 시아버님께서 시어머니를 돌봐주시고 계시거든요.

진; 사실 남녀를 떠나서요. 노인이 노인을 케어한다는 건 정말 힘든 것 같아요. 시부모님이 두 분 다 팔순 넘으셨죠?

구름; 네

진; 전 드라마가 참 좋았어요. 하지만 병에 걸린 부인을 데리고 나가서 케어해 보겠다고 나선 점이 얼핏 멋있어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것 같아요. 노인들이 실제 그것을 원하실까요? 드라마 구조상 필요한 애긴지는 몰라도 너무 멋을 부린 것 아닐까요?

구름; 맞아요. 사실 저희도 실은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. 자식들과 같이 있고 싶어 하시는 속내가 있죠.

진;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려다보니 벅차서 결국 치매로 발전한 부인이 집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죠. 나이 들어 뿌리를 옮기는 일은 잘 고려해야 합니다.

구름; 요즘은 병원으로 많이 가죠. 증세가 심해지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. 저도 사실 자신이 없다보니…

진;  그렇겠죠. 드라마는 너무 동화 같은 엔딩이에요.

구름; 실제 현실이라면 이 할머니 정도로 병이 깊어지면 병원이 답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.

진; 게다가 어디 친자식도 할지말지 한 일을 손주 며느리가 한다는 게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. 하지만 한편으로는 손주 며느리라서 몇 다리 건너서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.

구름; 의리 있어 보여 좋았지만요. 현실은 너무 다르긴 하죠. 솔직히 친정 부모님이면 조금 더 다를 것 같아요. 날 키워주신 분이고 아무래도 제 부모님이니까요. 그런데 파킨슨병을 앓는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더욱 결심하기 힘들 것 같아요. 자진해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. 정말 어쩔 수 없이 사정상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. 그리고 함께 살면서도 상처를 많이 받기도 해요.


진; 다른 한편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 엄마가 파킨슨병인 것을 알면 친자식은 그렇게 발을 구르고 울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. 우리나라 직계 가족들 반응이 너무 감정적인데 방송에서 이런 측면을 더 부추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.

구름; 대처를 못하는 건 맞죠. 대부분 넋이 빠지죠. 만일 자식이 이성적이면 되게 차가운 사람이 되죠.. 같이 울어주고 슬퍼해주길 바라기도 하고요. 저는 그냥 현실이 이렇구나 생각하고 이성적인 편이었는데요. 그래서 서운해 하시기도 했어요.

진; 이 드라마를 보고 한 두 가지 분명 현실 문제를 의논할 수 있을 것 같아요.  드라마에선 하지 못한 얘기들… 예를 들면 우리가 죽음에 대한 교육이 전혀 되지 않는데요. 이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. 그리고 이 드라마에선 자식이 여럿 아니었지만, 현실에선 자식들이 치매부모 대신 재산관리 한다며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더라고요.

구름;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런 집들도 많을 것 같아요. 드라마  내용 중에서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 설정이 있었나요?


진; 우리회원들께 상황을 다시 써보라고 하면 재미있겠는데요. 남녀 역할을 바꿔서요. 만일 부인이 아니라 남편(최불암 역)이 아팠다면 어땠을까요?

구름;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무겁지 않았을까요?

진; 근데 이 드라마에선 손주 며느리 감이 제 먼저 알게 되어서 앞에서 많이 커버를 해주죠.

구름 ;그 장면은 봤어요.

진 ; 환자는 방귀냄새를 잘 못 맡죠

구름; 아, 봤어요.

진; 우리는 익숙지 않은 상황인데, 드라마에선 환자 본인이 발병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상당히 존중해 주고 있어요.

구름; 아, 그럴 수도 있겠네요. 생각 못했어요. 치료가 우선이라고만 생각해서요. 하지만 병은 감추면 안 돼요. 병인데 감춰야 한다면 비극이에요

진; 저도 한동안 감췄었어요. 일종의 회피예요.

구름; 일상이 달라진다는 게 두려우셨을 것 같네요. 그 기간을 잘 견뎌내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건데 힘드셨을 것 같아요.

진; 네 두렵죠. 그런데 알려진다고 해도 최불암 씨가 맡은 보호자 입장을 지지합니다. 즉 환자를 그전과 똑같이 대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동정보단 똑같이 대해달라는 거. 결국 우여곡절 끝에 모든 식구들이 알게 되었을 때 순옥은 식구들에게 마치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인 듯 말하죠. “이제 맘 놓고 아파도 되겠다.”고. 오히려 환자가 식구들을 위로하는 거예요.

구름; 마지막 장면은 3년 후의 모습인데요. 순옥 씨는 철수 씨도 까먹고 단지 딸만 인식하는 치매환자로 나오더라고요. 공원에서 철수 씨는 그런 순옥 씨에게 자신을 노인 환자를 돌보는 요양 보호사 김철수라고 소개하죠.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아이들과 식솔들도 순옥에게 소개하고 집으로 초대하죠. 수박 먹는 것을 도와주는 철수 씨의 손길에 부끄러워하는 순옥 씨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. 아 정말 사랑엔 나이가 없나요?

진; 그래서 저는 노래방에서 부르고 있답니다. 이렇게요.

야~야~야~ 내 병이 어때서~
춤추기에 딱 좋은 병인데.
마음은 하나요. 느낌도 하나요.
사랑만이 정말 내 치료젠데.
눈물이 나네요. 내 병이 어때서.
춤추기에 딱 좋은 병이지.
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떨고 있는
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.
파킨슨병이 어때서. 춤추기에 딱 좋은 병인데.
춤추기에 딱 좋은 병이지.


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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